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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은 종이 낱장들은 땅이 될 수 있을까? (2021-2023 작업노트)
내가 모은 종이 낱장들은 땅이 될 수 있을까?
- 마크메이킹
나의, 글이 된 말들, 글이 되지 못한 말들. 드로잉이 된 생각들, 생각이 된 드로잉들. 이것들은 선형적으로 쌓이지 않는다. 논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들은 부유하여 목적과 결과를 향한 확신 을 흐트러트리고 방해한다. 나는 이것들의 힘 을 믿고 싶다. 삶을 충실히 살아간 비선형적이고 무논리적인 순간들이 이어져 또렷하고 분 명한 그림과 이야기가 되는 장면을 기대한다.
- 구조와 최소 단위
형태소는 언어학의 개념으로 ‘일 정한 의미를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이다. 중학교 생활국어 시간에 배웠다. 관념적 세계에 갓 초대된 십 대의 나에게는 너무도 생소했던 이 개념을 나는 두고두고 종종 떠올렸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어떤 것. 무엇을 선택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걷고, 쓰고, 말하고, 사진을 찍었다. 몸을 통과해 나오는 모든 것들—손가락을 따라 쓰인 글, 눈이 쫓아 담은 장면들, 입을 통해 흐른 문장들—이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었 다. 다만 호흡의 리듬, 글자와 그림이 쓰이고 그려진 낱장의 종이들, 그리고 걸어온 길과 그 풍경 같은 것들이 남았다. 나는 이것들이 삶의 최소 단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최소 단위는 모여 무언가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다.
삶의 최소 단위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오직 나의 동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져야 함. 나는 이 최소단위가 만들어낼 구조를 기다린다. 구조를 만들기 위해 통상적으로는 규칙이 필요하 다. 하지만 삶은 공생을 위해 규칙을 거절한다. 부대끼고 방해받는 것을 품에 둔다. 조화뿐 만 아니라 방해와 반목까지가 공생이다. 나는 내가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구조를 결정하는 방식과 태도일 뿐. 그 구조의 완성형을 나는 아직 볼 수 없다.
- 세대간 트라우마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것의 목적 역시 나는 같은 것으로 생각한 다. 이야기 함으로써 과거를 과거에 두고, 과거를 동정하지 않으며, 현재를 지키고, 꿈을 지 금으로부터 출발시킨다. 땅은 나아가는 걸음과 호흡을 목격한다. 땅 위를 덮은 풀을 생각한 다. 풀은 걸음과 호흡을 친밀하게 도와준다. 풀 밟는 소리는 구조를 예감하게 한다.